피터라인 보우, 마커스 레디커 지음.
정남영, 손지태 옮김.
도서출판 갈무리 펴냄.
p.12
17세기 초 영국이 식민지 확장을 시작하는 시기부터 19세기 초 도시중심의 산업화 단계에 이르기까지, 지배자들은 거대한 노동체계에 질서를 부여하는 일의 어려움을 나타내기 위하여 헤라클레스-히드라 신화를 참조하였다. 그들은 땅에서 쫓겨난 농민들, 추방된 중범죄자들, 하인들, 종교적 급진주의자들, 해적들, 도시 노동자들, 병사들, 선원들 그리고 아프리카의 노예들을 그 괴물의 다양하고도 항상 변하는 머리들이라고 불렀다.
p.64
헤라클레스는 특정한 인종 집단인 그리스인의 왕권, 정치적 주권, 교역을 확립하는 데 일조했다. 그는 탐험, 무역, 정복의 모델로 적당한 인물이었다. 실제로 헤라클레스 숭배라고 할 만한 것들이 17세기 영국 지배계급 문화를 물들이고 있었다.
이틀에 걸친 변정수 선생님의 어문규범 강의를 간단히 요약함.
조판 교정 Proofreading / Correction (교정)
원고 교정 Revision (교열)
편집자는 '독자라고 예상되는 일들이 갖추리라 기대되는 배경지식'을 알고 있어야 함.
이는 배우와도 같다. 편집은 열린 태도를 바탕으로 자기 안의 실마리를 극대화 시키는 과정.
저자의 '동일성유지권'을 침해하면서까지 원고에 수정을 가하려면,
상품성을 제고하고 의사전달을 보다 효율적으로 하기 위함이라는 '목적'이 분명해야 함.
물론, 이 경우에도 저자의 양해는 필수!
그외 모든 경우는 훼손!
"그해 10월, 대통령 종신제를 골자로 하는 유신헌법이 공포되었다"라는 문장에서,
사실관계에 따르자면 종신제가 아닌 간선제가 맞다.
허나 그렇다고 '대통령 간선제'로 표현하면 저자가 전달하고자 하는 부정적인 의미가 사라져 버린다.
"그해 10월, 사실상의 대통령 종신제를 골자로 하는 유신헌법이 공포되었다"로 바꾸는 게 어떠한가?
영어에서 "It's me!"란 문장은 어법상 틀렸다.
"It's I!"가 맞다. 허나 그렇다고 'me'를 'I'로 바꾸는 것이 교열일까?
발화맥락과 수용맥락을 종합적으로 판단해야 한다.
이오덕 선생님의 언문일치론은 글이 특별한 것이 아니란 점을 강조한다는 측면에서 효용이 있으나,
말과 글은 분명 다른 측면이 있다.
글은 보편성을 확보하기 위해 말의 상황적 맥락을 따로이 재구성하여 전달할 필요가 있다.
우리가 흔히 얘기하는 '맞춤법(정서법; Spelling)'은 사실 '표기규범'을 얘기하는 것으로,
꽃이 예쁘다(O), 꼬치 옛브다(X), 꼬치 옙브다(X)의 경우와 같이,
소리값을 어떠한 시각기호로 일치시킬까에 대한 문제이다.
꽃이 예쁘다인지, 꽃이 이쁘다인지를 판단하는 문제는 맞춤법의 영역이 아니다.
그 외의 언어표준은 한국어의 변화 속도가 워낙 빠르므로, '정답은 없다'고 보는 게 맞다.
사전은 출판물을 통해 개정을 하므로 편집자가 말흐름에 무관심하면 말과 글이 달라질 우려가 크다.
생산적 긴장. 표준을 무시해서도 안되고 절대시해서도 안된다.
만약 정보전달을 목적으로 한다면, 가능한 붙여쓴다.
반면 많은 생각이 필요할 경우, 가능한 띄어쓴다.
편집자는 붙여쓰기 위주로 했는데 디자이너가 자간을 넓혀버리면,
이도저도 아닌 선택이 되어 버린다. 컨셉을 유지하라. 일관성 있게 하라.
진짜 확신이 없다면 저자의 글 그대로 둬라.
띄어쓰기를 한 권의 책에선 통일하라는 말은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통일되지 않은 띄어쓰기는 독자로 하여금 '난삽함'을 느끼게 할 수 있다.
띄어쓰기를 통일하는 것은 '소음'을 제거하여 호흡을 유지시키기 위한 방편이다.
허나 그렇다고 이를 한 권 단위로 통일시킬 필요가 있나? 어느 독자가 한 호흡에 책을 읽는가?
10 페이지와 100 페이지의 띄어쓰기를 반드시 일치시킬 필요는 없다.
집단등교 거부인가 집단 등교거부인가?
대량살상 무기인가 대량 살상무기인가?
이를 구분할 수 없다면 그건 정말 큰 문제.
열심히 건성으로 읽으면,
전태일 평전을 읽고 이를 박정희에 대한 자신의 평가와 연계시키지 못할 수 있다.
이는 책읽기에 '자기자신'을 대입시키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양한' 서적을 얼마나 '밀도있게' 읽었나?
'터널안굽은길'은 '터널 안 굽은 길'로 띄어쓰기 하는 것이 규범적으론 맞다.
'터널 안'은 분명 한 단어로 볼 수 없기 때문이다.
허나 띄어쓰기의 본질은 의미전달이다. '터널안 굽은 길'이 맞다.
"슬픈 바람이 울다"란 문장이 뭔가 이상한가?
"바람도 슬피 운다"로 바꿔보는 건 어떠한가?
이렇게 바꾸는 능력? 글쓰기 능력!
글쓰기 훈련이 안되어 있는데, 어찌 저자의 글을 고칠 자격이 있다는 것인가?
다독다작다상량에서 다상량은 무엇을 뜻하는가?
다른 것을 찾는 과정이다. 의미는 차이에서 발생한다. 결국 의미를 찾는 과정이다.